20년 넘게 서울을 사랑해온 한 팬이, 포르투갈에서 히칼도를 만난 또 다른 서울 팬의 영상을 보고 난 뒤 적는 기록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하나의 영상을 내게 보여줬다.
포르투갈 현지에서 히칼도를 찾아가 인터뷰한 서울 팬의 영상.
솔직히 말하면,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20년 넘게 히칼도를 사랑해온 나였지만,
그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걸 해낸 팬이 있었다.
포르투칼까지 날아가
히칼도와 마주 앉아
서울 이야기로 웃고, 추억을 공유하고, 진심을 나눈 팬이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이 너무 감동적이고 아름다워서
영상의 주인에게 직접 연락을 드렸고,
“포스팅을 작성해도 될지” 허락을 구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식으로 활용되고 더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포르투갈까지 다녀온 것이니 너무 환영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히 히칼도 추억 칼럼이 아니라,
히칼도를 찾아간 그 팬에 대한 존경,
그리고 그 팬 덕분에 다시 깨어난 히칼도 사랑을 담은 글이다.
2005년 여름. 외국인 선수 대부분이 브라질 국적이었던 K리그에, 갑자기 한 포르투갈 미드필더가 등장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FC서울 유니폼 위로 금발이 흩날렸고, 그의 첫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관중석이 술렁였다.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 뭐지? 저 선수는 뭔가 다르다.”
그때 느낀 바로 그 낯섦과 충격, 그리고 기대감.
히칼도는 그날부터 내 마음속 ‘서울의 특별한 외국인’이라는 자리를 예약했다.
K리그는 그때까지 ‘전투적’, ‘투지’, ‘스피드’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히칼도는 달랐다.
부드럽고, 정확하고, 날카롭고, 때로는 사악하다 싶을 정도의 킥 감각.
롱패스를 뿌리는 순간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고,
박주영에게 연결되는 킬패스는 ‘저게 인간이 가능한 패스인가’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의 킥은 단순히 축구 기술이 아니었다.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2005년은 ‘박주영 신드롬’의 해였다.
청대 시절부터 수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프로 데뷔 시즌부터 리그 전체를 흔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박주영의 뒤에는 언제나 히칼도가 있었다.
박주영의 득점을 책임진 수많은 도움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린 롱패스
상대 전술을 무너뜨리는 전진 패스
많은 팬들이 "박주영 보러 왔다가 히칼도에게 반했다"던 그 시절.
나 역시 그랬다.
히칼도는 조용한 천재였고, 박주영은 폭발하는 신성이었다.
그 두 사람이 함께 만든 2005년 서울의 공격은 지금 봐도 명작이다.
히칼도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바로 수원전 골 후 양손을 귀에 가져다대던 그 세리머니.

이 장면은 팬들 사이에서 “도발”로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하지만 이번 포르투갈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기 내내 수원 팬들이 포르투갈어로 욕을 해서…
솔직히, 그 순간 해방감이 있었다.”
맞다.
라이벌전이라는 건 그런 감정으로 완성되는 법이다.
그리고 히칼도는 그 치열한 순간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서울 팬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히칼도를 이야기하면 “팬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영상은 그 문장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일반적인 의미의 팬심이 아니라,
행동하는 팬심,
축구를 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팬심이었다.
포르투갈이라는 머나먼 타지에서
히칼도의 가족과 식탁을 마주하고
그의 커리어, 그의 추억, 그의 아픔, 그의 사랑까지
모두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건
그 팬의 진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정말 부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멋있었다.
너무 멋있었다.
그 팬의 진심 덕분에
전 세계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히칼도가
2007년, 귀네슈 감독이 부임하고 서울은 완전히 새로운 전술을 구축했다.
짧은 패스, 빠른 전개, 스피드 중심.
히칼도는 그 전술의 중심과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
그의 스타일은 바꾸기 어려웠다.
마침내 그는 벤치로 밀려났고, 팬들의 반발은 커졌다.
인천전에서 서울 팬들이 그의 등번호 50을 일제히 들어 올리며
‘히칼도송’을 부르던 장면은 지금도 전설이다.
그날 이후 히칼도는 팬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잔류를 결정했지만,
결국 시즌이 끝나고 포르투갈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공항에서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
“보고싶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울었다.
정말 울었다.
영상 속 히칼도는
우리가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따뜻했고,
겸손했고,
여전히 서울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남겼다.
“한국이 그립다.”
“FC서울은 제 마음속 고향이다.”
“팬들이 날 초청해준다면 언제든 당장 가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히칼도를 좋아한 20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정당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말을
직접 눈앞에서 들은 그 팬이,

히칼도의 기록은 화려하다.
리그 도움왕
리그컵 우승
76경기 8골 25도움
하지만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기록이 아니라 태도, 마음, 진심 때문이다.
그는
✔ 팬을 위해 뛰었고
✔ 팬을 위해 달려왔고
✔ 팬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 팬과 서울을 자신의 축구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에서 초청해주면 바로 가겠다”고 말한다.
그는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문화는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FC서울과 팬들이 저를 성장시켰다.”
“서울은 제 마음속 고향이다.”
솔직히…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는 그를 잊지 못했고,
그도 우리를 잊지 않았다.
서로 이렇게 오래 사랑한 사이는 흔치 않다.

나는 20년 넘게 FC서울을 응원해온 팬이다.
수많은 선수들이 왔다가 떠났지만,
히칼도만큼 인간적으로 또 뜨겁게 남은 선수는 거의 없다.
그는 우리에게
축구 그 이상의 감정을 주었다.
자부심
격정
기쁨
그리고 사랑
히칼도는 한국을 떠났어도,
서울을 떠났어도,
시간이 10년, 20년 흘러도…
우리 마음 속에서 떠난 적이 없다.
히칼도는 서울을 떠났지만, 떠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서울 또한 히칼도를 떠나보낸 적이 없다.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히칼도,
당신이 우리에게 준 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서울 팬들은 당신을 잊지 않았고
당신도 우리를 잊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지금—
우리는 또다시 당신을 기다립니다.
언젠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50번의 등을 향해
히칼도송을 부를 그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