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둔 유니폼이 있다. 등판에 큼지막하게 박힌 CHUNG YONG, 그리고 27.
오늘은 그 유니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꽤 길었다.
서울에서 이청용은 그냥 “잘했던 유망주”가 아니었다. 기성용과 함께 ‘쌍용’이라는 이름으로 팀의 얼굴이 됐고,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시대였다. 경기장에 사람이 더 모이고, 유니폼이 더 팔리고, “서울에 이런 재능이 나온다”는 기대가 불붙던 시절. 마케팅 효과도, 팀의 체감 온도도 확실히 올라갔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국내 복귀 때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던 점이 마음 한쪽에 찜찜하게 남아 있다. 루머가 어떻고를 떠나서, 팬 입장에서는 “왜 하필 그 타이밍에?”라는 감정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유니폼 포스팅을 할까 말까, 계속 망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개인적으로는… 은퇴만큼은 서울에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고, 어떤 선택을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중에”가 아니라 은퇴 전에—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이청용을 한 번은 제대로 적어두고 싶었다. 오늘은 그 마음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빛났던 건 아니다. 2006년, 2년 동안 1군에서 기회를 거의 못 잡다가 수원과의 개막전에서 데뷔를 했다. 풀타임을 뛰었지만 슈팅도 없고, 경고도 받고, 다음 경기에서는 이른 교체. 그리고 다시 2군 통보.
이청용의 서울 시작은 “천재의 데뷔”라기보다, 되게 현실적이었다. 냉정한 프로의 문턱 같은 느낌.
하지만 2007년이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세뇰 귀네슈 감독 체제에서 개막전 선발. 그리고 대구전에서 프로 데뷔골.
이 장면을 떠올리면, 나는 기록보다도 “그 이후”가 더 생생하다.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한테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는데, 스포트라이트가 처음이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는 일화. 그게 너무 이청용 같았다.
재능은 빛나는데, 본인은 아직 그 빛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
그런데 그 “낯설어하던 유망주”가, 시즌 초반부터 연승 흐름을 만들며 공격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2007시즌 기록은 25경기 3골 6도움, 그리고 K리그 컵 도움왕.
이쯤 되면 그냥 “유망주”가 아니라, 서울의 공격이 그의 발끝에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시즌이었다고 봐야 한다.
2008년은 더 확실했다. 컵 포함 26경기 6골 6도움. 베스트11까지.
이 시기 이청용은 단순히 측면에서 속도를 내는 윙어가 아니라, 공을 잡는 순간 경기 리듬을 바꾸는 타입이었다.
퍼스트 터치가 부드럽고 간결해서 압박을 받아도 공이 발에서 잘 안 떨어졌다.
드리블도 “화려함”보다 짧고 날렵하게 치고 들어가는 스타일.
무엇보다 시야가 넓고 판단이 빨라서, 공간이 보이면 찔러주는 패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기성용이 있었다.
둘이 같이 있을 때 서울은 “공을 오래 잡아서 점유하는 팀”이라기보다, 필요할 때 한 번에 박아 넣는 팀이 됐다. 한 명은 방향을 만들고, 한 명은 속도를 붙이고.
그때의 서울은 지금 말로 하면, ‘빌드업’과 ‘전진 패스’가 동시에 살아있는 팀이었다. 팬 입장에선 그냥… 재밌었다. 진짜로.
2009년은 결정적으로 “이청용이라는 이름이 서울을 넘어가던 해”다. 시즌 초 전남전에서 도움을 몰아치고, ACL 무대에서도 감바 오사카 같은 팀 상대로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리고 결국 볼턴의 오퍼, 고별전 같은 강원전.
2009시즌 기록은 23경기 3골 7도움, 서울 시절 통산은 78경기 12골 20도움. 숫자는 숫자지만, 체감은 숫자 이상이었다.
“서울에서 진짜 큰 별 하나가 떠오르는구나”라는 감각.

이청용은 커리어가 진행되면서 스타일이 조금씩 변했다.
초기의 역동적인 드리블에 더해, 시간이 흐를수록 패스와 볼 키핑 중심, 그리고 후방 빌드업까지 내려오는 움직임이 늘었다. 요즘 축구 트렌드로 보면, 측면에서 “라인만 타는 윙어”보다 측면 플레이메이커/연결형 윙어의 가치가 더 커졌잖아. 이청용은 그 흐름을 커리어로 증명한 선수 중 하나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슈팅이 약하다는 평가(소위 ‘소녀 슛’), 후반 갈수록 체력 이슈, 1대1 찬스에서 접는 선택들, 수비 밸런스 문제… 팬들은 장점만큼 단점도 같이 기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단점들까지 포함해서도 “서울의 이청용”은 팬들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는다. 왜냐면 그 시절의 서울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가능성이 폭발하던 팀이었으니까.
그래서 다시, 이 유니폼으로 돌아온다.
등판의 CHUNG YONG 27을 보면 기분이 복잡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유니폼은, 서울이 지금의 위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한 시절을 함께 만든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은퇴라는 마지막 장면만큼은 서울에서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본인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팬이니까—가끔은 그런 바람을 품어도 되지 않나 싶다.
오늘 이 글은 “미화”가 아니라 “기록”이다.
서울에서 뛰던 이청용이 있었고, 우리는 그 시절을 뜨겁게 봤고, 그래서 이 유니폼이 남아 있다.
언젠가 이 유니폼을 다시 꺼냈을 때, 그때의 나는 오늘의 이 글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래, 그때 진짜 재밌었지. 서울이, ‘쌍용’이, 우리 마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