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니폼은 예쁘고,
어떤 유니폼은 강하고,
그리고 어떤 유니폼은 시간을 입고 있다.
정조국 유니폼이 딱 그렇다.
9번이든, 36번이든, 그 숫자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아, 그때 그 장면…”이다.
오늘은 기록이 아니라,
유니폼에 남아 있는 정조국의 시간을 꺼내보고 싶다.
처음 FC서울(당시 안양)에서 정조국이 입었던 9번은
축복이자 족쇄였다.
고교 무대를 씹어먹고 올라온 초대형 유망주,
별명까지 공모로 정해질 정도였던 기대치.
‘패트리어트’라는 이름엔
골을 넣으라는 주문이 항상 따라붙었다.
초반 침묵, R리그행,
그리고 PK 한 방으로 터진 데뷔골.
그 골 이후 정조국은 확실히 골잡이였다.
최연소 두 자릿수 득점
신인왕
공간을 읽는 침착한 움직임
빠르진 않았지만,
정조국은 항상 골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먼저 도착하는 선수였다.

문제는 늘 경쟁이었다.
박주영, 김은중, 두두, 데얀…
FC서울 공격진은 언제나 과포화였다.
정조국은 주전과 후보를 오가며
‘잘하는데 애매한 선수’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선수는 묘하게도,
중요한 순간에만 살아났다.
마스크를 쓰고 뛰던 플레이오프
후반 조커로 터지는 결정적 골
투톱에서 살아나는 파괴력
정조국은 스포트라이트보다
승부처를 아는 스트라이커였다.

그리고 2012년.
정조국은 36번을 달고 다시 돌아온다.
36번.
에이스의 번호도 아니고, 기대를 강요하는 숫자도 아니다.
그런데 이 번호로 그는 가장 정조국다운 골들을 남긴다.
슈퍼매치 동점골.
연패를 끊은 한 방.
그리고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
득점 수는 많지 않았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골이었다.
이때의 정조국은
유망주도, 스타도 아니었다.
팀이 흔들릴 때
조용히 한 발 내미는 베테랑이었다.


정조국은 화려한 공격수가 아니었다.
드리블로 수비를 찢지도 않았고,
중거리로 경기장을 뒤집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읽고
수비 사이로 스며들고
기회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투톱에서 빛났고,
동료와의 호흡이 맞을수록 위력이 커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라커룸에서도, 경기장에서도
‘형’이 되는 선수가 됐다.
정조국 유니폼은
“레전드 유니폼”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애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FC서울을 오래 본 팬이라면 안다.
이 유니폼엔
기대에 짓눌렸던 시간
밀려났던 시간
다시 증명했던 시간이
전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유니폼은
전시용이 아니라, 이야기용이다.
정조국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직도 그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유니폼 하나쯤은,
팬이라면 충분히 아껴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