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K리그 미디어데이, 장소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 하지만 내 마음의 무대는 이미 서울월드컵경기장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즌 시작 전, 우리가 늘 듣고 싶었던 말이 있다. “올해는 다를 거다.”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는 조심스럽게 믿고 싶은 말.
그런데 오늘, FC서울의 김기동 감독은 그 말을 조금 다르게 꺼냈다.
“꽃샘추위를 지났다. 완연한 서울의 봄을 만들고 싶다.”
이 문장 하나가, 지난 시즌의 답답함을 정확히 겨냥했다. 기대는 컸고, 결과는 6위였다.
‘폭풍영입’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우리의 봄은 봄답지 못했다.
그렇다고 겨울로 돌아갈 수는 없다.
2026년의 FC서울은, 봄을 “기다리는 팀”이 아니라 “만드는 팀”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김기동 감독이 가장 또렷하게 남긴 문장은 이것이었다.
“올 시즌은 서울과 저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길 바란다.”
이 말이 왜 크게 들렸냐면, 그냥 ‘잘하겠다’가 아니라 ‘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FC서울은 어떤 경기에서는 분명 강했고,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미끄러졌다.
상승세를 탈 타이밍에 발목을 잡혔고, 그게 쌓여 ‘기복’이라는 단어로 정리됐다.
팬들은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흔들리는 팀의 표정을 본다.
그리고 그 표정이 한 시즌 내내 반복되면, 응원은 사랑이 아니라 “숙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김기동 감독의 이번 선언은, 성적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팬이 다시 믿을 수 있게, 경기력의 결이 달라져야 한다.
“부담이 아니라 책임감”이라고 말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능력이 있기에 기대가 생긴다는 말, 그건 팬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으니까.
미디어데이에서 각 팀 감독들이 적은 출사표는 짧지만 묵직했다.
전북의 ‘새로운 별’, 광주의 ‘수적천석’ 같은 문구 속에서 FC서울은 **‘완연한 서울의 봄’**을 들었다.
김기동 감독은 말했다.
2024년에 ACLE(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엘리트) 진출을 만들며 “봄이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봄이 오기 전엔 꽃샘추위가 있다.
올해는 다르다. 끝까지 강팀들과 경쟁하겠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FC서울이 ‘상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봄”은 단지 성적이 아니라 분위기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의 공기, 선수가 흔들릴 때 팬이 느끼는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을 뒤집는 한 장면.
봄은 그런 것으로 온다.
우리에게는 이미 서울월드컵경기장이라는 큰 무대가 있고, 이제 필요한 건 ‘그 무대에 어울리는 흐름’이다.
상암의 바람은 차가울 때도 있지만, 뜨거운 팀을 만나면 그 바람조차 응원처럼 들릴 때가 있다.
김기동 감독이 또 하나 강하게 예고한 건 전술적 변화였다.
“전술적으로 변화를 많이 줬고 선수들도 흥미를 느끼며 잘 따라오고 있다. 상대가 까다로워할 만한 요소를 준비했다. 전과는 다른 축구를 보여줄 수 있다.”
여기서 팬들은 자동으로 체크리스트를 꺼낸다.
공을 잡았을 때의 방향성은 선명해질까?
수비에서 공격으로 넘어갈 때 ‘멈춤’이 줄어들까?
한 골 먹히면 분위기가 무너지는 패턴은 끊길까?
무엇보다, 상대가 “서울 만나기 싫다”는 표정을 짓게 만들 수 있을까?
전술은 디테일의 싸움이지만, 팬이 체감하는 건 아주 단순하다.
“오늘은 우리가 계획대로 하고 있구나.” 그 느낌이 오면, 경기장 전체가 흔들린다.
FC서울이 원하는 봄은, 바로 그 흔들림에서 시작될 것이다.
시즌 시작 전부터 우리는 이미 긴 호흡을 맛봤다.
ACLE 리그 스테이지에서 FC서울은 비셀 고베에 패했고, 산프레체 히로시마와는 비기며 고비를 넘겼다.
김기동 감독은 이 경험을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시즌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힘들었지만
한 번 한숨 쉬어봤으니
리그에서는 오히려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올해는 K리그만 바라보지 않겠다고 했다.
“16강에 진출한 만큼 대회도 포기할 수 없다. 어느 하나에 치중하기보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접근하겠다.”
이 말이 좋았다. 팬은 “선택과 집중”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포기”에는 예민하다.
특히 FC서울처럼 큰 무대가 어울리는 팀이라면 더 그렇다.
ACLE와 K리그1을 함께 끌고 가는 시즌. 그건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기준이 높아질수록, 봄은 더 빨리 온다.
이번 시즌 FC서울은 여러 변화를 겪었다. 영입도 있었다. 이름만 봐도 팬들의 심장이 먼저 뛰는 조합이 들어왔다.
송민규, 후이즈, 바베츠, 로스, 그리고 야잔과의 재계약까지. 김기동 감독은 말한다.
“요소요소에서 제 역할을 해줄 선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말은 곧, 지난 시즌 우리가 겪었던 ‘쏠림’을 줄이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실제로 김기동 감독은 린가드 이야기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시즌엔 제시 린가드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그에게 팀을 맞추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 하나의 팀이 아니라 전체적인 팀”**을 만들고 싶다고.
여기서 팬들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린가드는 공격포인트로만 남는 선수가 아니었다.
흐름을 조율하고, 패스를 공급하고, 경기에 ‘표정’을 넣던 선수였다.
김기동 감독이 “이럴 거였으면 여기 있지…”라고 농담 섞어 아쉬움을 말한 대목에서는, 그 애정이 느껴져서 더 짠했다.
하지만 축구는 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FC서울은 이제 ‘한 명의 이름’이 아니라 ‘팀의 구조’로 승부해야 한다.
미디어데이에서 주장 김진수의 말은 짧고 명확했다.
“제가 생각하는 봄은 팬들의 행복이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서는 결국 결과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장이 먼저 책임감을 지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하나, 팬심을 간질인 발언이 있었다.
김진수는 “득점왕은 클리말라, 도움왕은 안데르손이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팀 내부의 기대치다.
공격에서 누가 해결하고, 누가 연결할지에 대한 그림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공허하지만, 근거 있는 자신감은 경기장에서 증명된다.
김기동 감독은 개막전,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반드시 승리”를 말하며 좋은 흐름을 타고 싶다고 했다.
시즌 초반 한 경기의 승패가 모든 걸 결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시즌의 ‘기류’**는 결정한다.
특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작하는 분위기, 그건 곧 2026년 FC서울이 어떤 표정으로 달릴지를 보여준다.
우승 후보로 전북, 대전, 포항을 언급하면서도 “우리도 우승 경쟁에 나서겠다”고 말한 건, 목표를 숨기지 않겠다는 의미다.
목표를 숨기는 팀은 흔들릴 때 변명을 찾지만, 목표를 공개한 팀은 흔들릴 때 이유를 찾는다.
이유를 찾는 팀은 결국 다시 달린다.
팬은 늘 마음이 먼저 뛴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지난 시즌 FC서울은 기대만큼 오르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닳아버린 날도 있었다.
하지만 2026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김기동 감독과 김진수는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팬들의 시각을 바꿀 시즌
전과는 다른 축구
ACLE와 K리그1을 함께 끌고 갈 각오
그리고 “완연한 서울의 봄”
봄은 누가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다.
FC서울이 경기력으로 만들고, 팬들이 응원으로 밀어주며,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함성으로 완성하는 계절이다.
상암의 밤공기가 아직 차갑더라도, 우리는 안다.
한 번 불이 붙으면 그 추위는 오히려 더 짜릿해진다는 걸.
개막전부터, 한 경기 한 경기에서 “올해는 다르다”가 말이 아니라 장면이 되길.
그리고 시즌이 끝날 때, 우리가 웃으며 말하길 바란다.
“그래, 이번엔 정말 완연한 서울의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