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경기 시작 3분 만에 조영욱 골이 들어갔을 때도 쉽게 안심은 안 됐다.
상대가 포항이었고, 장소가 포항스틸야드였기 때문이다.
이 경기장은 늘 그렇다.
조금만 흐름이 꼬이면 순식간에 거칠어지고, 세컨드볼 하나에 분위기가 뒤집히고, 한 번 흔들리면 90분 내내 끌려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경기는 개막 3연승 도전이라는 기록보다도, FC서울이 시즌 초반 정말 강해졌는지를 확인하는 시험대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결과는 1-0.
스코어만 보면 얇은 승리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꽤 두꺼운 승리다.
전반 3분 조영욱의 선제골은 단순히 빠른 시간에 나온 득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기동 감독이 이번 경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가 응축된 장면에 가까웠다.
중원에서 손정범이 넣은 스루패스 한 번에 포항 수비 간격이 갈라졌고, 조영욱은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주저함도 없었다.
뒷공간 침투, 타이밍, 마무리까지 깔끔했다.
FC서울이 시즌 초반 보여주는 공격의 핵심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된 장면이었다.
이 팀은 지금 무작정 공만 돌리는 팀이 아니다.
볼을 가졌을 때는 차분하지만, 찌를 타이밍이 오면 생각보다 빠르게 들어간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칼끝이 이날은 조영욱이었다.
사실 이 이른 선제골은 경기 전체를 바꿨다.
서울이 쫓기는 입장이 아니라 관리하는 입장으로 갈 수 있게 만들었고, 포항은 홈에서 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경기에서 꽤 인상적이었던 건 수치보다도 분위기였다.
포항은 홈에서 첫 승이 절실한 팀답게 강하게 나왔다. 몸싸움도 거칠었고, 압박 강도도 높았다.
실제로 경기 기록만 봐도 포항은 파울 18개, 경고 6개, 퇴장 1개를 기록했다. 반면 FC서울은 파울 8개, 경고 0개였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분명하다.
포항은 경기 흐름을 힘으로 바꾸려 했고, 서울은 그 안에서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게 생각보다 크다.
예전 서울이었다면 이런 경기에서 같이 예민해지고, 템포가 깨지고, 쓸데없는 신경전까지 따라가면서 경기 자체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FC서울은 달랐다.
상대가 거칠게 나오는데도 라인이 무너지지 않았고, 불필요하게 흥분하지도 않았다.
포항스틸야드 원정에서 제일 어려운 건 전술만이 아니다.
그 특유의 분위기를 견디는 일이다.
그런데 이날 서울은 그 분위기 자체를 꽤 잘 버텼다.
물론 완벽한 경기는 아니었다.
전반 15분 안재준의 슈팅은 구성윤의 선방이 아니었으면 위험했다.
전반 중반 이후에는 포항이 세트피스와 롱패스로 서울 박스 근처를 계속 두드렸고, 전반 32분엔 로스의 헤더 처리 이후 안재준에게 흐른 장면도 팬 입장에선 심장이 철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여기다.
위기는 있었지만, 연속으로 무너지진 않았다.
로스와 최준은 몸을 던졌고, 김진수도 후반 막판 완델손 슈팅을 육탄으로 막아냈다.
야잔과 구성윤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결국 이날 FC서울 수비는 화려했다기보다 단단했다.
누가 엄청난 슈퍼플레이를 몇 번 했다기보다, 한 줄이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이런 경기는 팬들이 안다.
수비가 “잘했다”보다 “끝까지 버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날이 있다.
포항전이 딱 그랬다.
전반 추가시간 트란지스카의 경고 누적 퇴장은 분명 경기의 분수령이었다.
포항 입장에서는 가장 뼈아픈 장면이었고, 서울 입장에서는 수적 우위를 안고 후반을 맞게 된 결정적 변수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FC서울의 경기 운영이 괜찮았다.
보통 수적 우위를 얻으면 지나치게 서두르다가 오히려 역습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1-0 리드 상황에서는 “한 골 더 넣고 끝내자”와 “일단 안정적으로 가져가자” 사이에서 애매해지기 쉽다.
하지만 서울은 후반에 그 균형을 비교적 잘 맞췄다.
후반 시작과 함께 이승모를 넣은 선택도 좋았다.
중원과 2선의 연결을 정리해주면서, 포항이 한 명 적어도 쉽게 죽지 않으려는 흐름에 맞춰 서울도 경기 템포를 다시 잡았다.
후반 초반 송민규의 슈팅이 골대를 때린 장면은 아쉬웠지만, 동시에 서울이 후반을 수동적으로만 보낸 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날 FC서울은 리드를 지키는 팀이면서도, 추가골을 노릴 줄 아는 팀이었다.
그 균형감이 시즌 초반 꽤 좋아 보인다.
이번 경기에서도 서울의 중요한 무기는 측면이었다.
포항이 전방 압박과 제공권으로 승부를 보려 했던 반면, 서울은 측면 전개와 크로스 타이밍에서 계속 답을 찾으려 했다.
김진수는 후반에도 여러 차례 날카로운 크로스를 만들어냈고, 최준은 수비에서 몸을 던지면서도 오른쪽에서 계속 버텨줬다.
송민규는 골은 넣지 못했지만 존재감은 있었다.
특히 후반 초반 골대를 맞힌 장면은 포항 수비를 한 번 더 움찔하게 만들었다.
조영욱의 골이 경기 결과를 만들었다면, 송민규는 경기 내내 포항이 쉽게 라인을 올리지 못하게 한 선수였다.
그리고 조영욱 얘기를 다시 해야 한다.
이날 조영욱은 단순히 골만 넣은 게 아니다. 전방에서 움직임이 좋았고, 초반 포항 수비를 계속 흔들었다.
56분 정승원과 교체되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하고 나갔다.
빠른 선제골을 책임진 선수답게 경기 전체의 방향을 먼저 잡아준 셈이다.
제주 원정이 극장골의 승리였다면, 이번 포항 원정은 관리의 승리였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강한 팀은 늘 같은 방식으로만 이기지 않는다.
어떤 날은 뒤집고, 어떤 날은 두드리다가 터뜨리고, 어떤 날은 먼저 넣고 끝까지 버틴다.
이번 FC서울은 그 세 번째 얼굴을 보여줬다.
점유율 58%, 슈팅 6대5, 유효슈팅 4대4.
압도적인 숫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밀린 경기도 아니다.
오히려 이 수치는 서울이 경기 주도권을 아주 무리하지 않으면서 쥐고 있었다는 뜻에 가깝다.
필요한 순간엔 볼을 가졌고, 위험한 구간에서는 라인을 정리했고, 교체 카드도 흐름에 맞게 썼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개막 3연승이라는 결과다.
19년 만에 다시 만든 기록이라는 상징성도 분명 크다.
하지만 팬 입장에서 더 기대하게 되는 건 기록 자체보다 내용이다.
지금 FC서울은 적어도 예전처럼 한 번 흔들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팀은 아니다.
힘든 원정에서도 버틸 줄 알고, 거친 흐름에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한 골 차 리드의 무게를 견딜 줄 안다.
그게 꽤 반갑다.
정말 오랜만에, 이 팀이 시즌 초반 분위기만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포항 원정은 늘 까다롭다.
상대가 완전체가 아니어도, 흐름이 좋지 않아도, 스틸야드라는 공간 자체가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 FC서울은 그곳에서 1-0으로 이겼다.
선제골을 넣었고, 위험한 시간을 버텼고, 수적 우위가 생긴 뒤에는 들뜨지 않고 경기를 닫았다.
이건 단순한 1승이 아니다.
시즌 초반 FC서울이 어디쯤 와 있는지 보여준 승리다.
조영욱의 한 방, 손정범의 패스, 구성윤의 선방, 김진수와 최준의 헌신, 그리고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팀 전체의 집중력.
그런 장면들이 하나씩 쌓여서 만들어낸 승리였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이 흐름이 다시 서울월드컵경기장, 상암으로 돌아와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이번 포항전은 분명 시험대였다.
그리고 FC서울은 그 시험을 꽤 단단한 방식으로 통과했다.
이 정도면 팬들이 괜히 기대하는 게 아니다.
올 시즌, 진짜로 뭔가 시작되는 걸까.
포항스틸야드에서의 1-0은 그렇게 보게 만든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