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2일, FC서울 출신 다카하기 요지로가 일본 도쿄에서 K리그 팬들을 만났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마련한 ‘K리그 데이 인터내셔널 뷰잉 파티’의 특별 게스트로 참석해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를 함께 보고, 자신이 K리그에서 뛰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날 서울은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을 포함해 클리말라의 두 골로 전북에 2-1 승리를 거뒀습니다.
최근에 FC서울 팬이 됐다면 다카하기라는 이름이 낯설 수 있습니다. 그는 2015년 여름 서울에 합류해 2016년까지 뛴 일본인 미드필더입니다. 2015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최우수선수(MVP)였고, 2016년 K리그 우승 선수단에도 속했습니다. 서울에서 기록한 리그 46경기 3골 4도움만 보면 그의 존재감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다카하기를 기억하려면 공격수에게 공을 연결하던 움직임과 우승으로 이어진 컵대회 장면을 함께 봐야 합니다.
‘2026 K LEAGUE DAY in JAPAN’은 일본 현지 팬들이 K리그 경기를 함께 관람하는 행사였습니다. 9월 12일 도쿄 신주쿠의 스포츠펍에 팬과 미디어 관계자 등 약 100명이 모였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발표에 따르면 참석자 가운데 약 60%는 일본인, 약 40%는 한국인이었습니다. 서울과 전북 팬들은 같은 공간에서 K리그1 29라운드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다카하기는 이날 서울에서 뛰었던 선수로서 게스트 자리에 섰습니다. 경기 전후 팬들과 만나 K리그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했고, 질문을 받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일본의 서울 팬에게는 익숙한 K리그 선수를 직접 만나는 자리였고, 오래 서울을 응원한 팬에게는 우승 시즌의 미드필더가 현재의 서울 경기를 함께 보는 장면이 됐습니다.
경기는 뷰잉 파티에 어울리는 극적인 결말로 끝났습니다. 서울이 전북 원정에서 1-1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넣어 2-1로 이겼습니다. 다카하기가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난 뒤 열린 경기였지만, 그가 몸담았던 팀의 승리에 도쿄의 서울 팬들도 환호했습니다.
다카하기 요지로는 1986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소년팀을 거쳐 어린 나이에 프로 무대에 올랐고, 에히메 FC 임대 기간을 제외하면 2014년까지 오랫동안 히로시마에서 뛰었습니다. 히로시마의 2012년과 2013년 J1리그 연속 우승을 경험했으며 2012년에는 J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됐습니다.
당시 다카하기는 공격수 바로 아래에서 동료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기회를 만드는 플레이메이커 성격이 강했습니다. 공격을 시작하는 위치가 늘 같지는 않았지만, 상대 진영에서 공을 받아 전방 선수에게 이어주고 직접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미드필더였습니다. 일본 대표팀에도 선발돼 동아시아 국가대항전에 출전했습니다.
2015년 상반기에는 호주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에서 뛰었습니다. 그해 여름 FC서울로 이적하면서 K리그에 입성했습니다. 서울은 아드리아노도 같은 여름에 영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해 후반기 서울의 공격에는 새로 합류한 두 선수의 역할이 모두 중요해졌습니다. 한 명이 중원에서 공격을 연결하고, 다른 한 명이 전방에서 기회를 골로 바꿨습니다.
다카하기의 FC서울 시절을 보여주는 경기를 하나 고른다면 2015년 10월 울산 현대와의 FA컵 준결승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서울은 울산 원정에서 2-1로 이겼고, 다카하기는 선제골을 넣은 뒤 아드리아노의 결승골까지 도왔습니다. 미드필더가 언제 직접 골문으로 들어가고, 언제 동료를 향해 공을 보내야 하는지를 한 경기에서 보여줬습니다.
전반 38분 선제골 장면에서는 몰리나가 전방으로 패스를 보냈습니다. 다카하기는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문전으로 침투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아드리아노에게 수비의 시선이 쏠린 사이 다카하기가 빈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공격수에게 패스만 공급하는 선수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직접 마지막 슈팅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골이었습니다.
후반 9분에는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다카하기가 수비 뒤를 향해 침투 패스를 보냈고, 아드리아노가 이를 받아 서울의 두 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드리아노가 달려 들어갈 위치와 순간을 다카하기가 읽었습니다. 앞선 골에서 자신이 활용했던 공간을 다음 장면에서는 동료 공격수에게 열어준 셈입니다.
울산은 이후 한 골을 만회했습니다. 서울이 2-1로 결승에 올라갔기 때문에 다카하기가 만든 선제골과 도움은 모두 승부에 직접 영향을 줬습니다. 그가 FA컵 4강전 최우수선수로 뽑힌 이유도 단지 공격포인트 두 개를 기록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서울이 팽팽한 경기에서 필요한 순간 공격의 마지막 선택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2015년 10월 31일 FA컵 결승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3-1로 꺾었습니다. 다카하기는 이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습니다. 4강에서 울산을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한 뒤 결승에서 다시 득점한 것입니다. 서울은 1998년 이후 17년 만에 FA컵 정상에 올랐고, 다카하기는 대회 MVP로 선정됐습니다.
결승에서 인천이 동점골을 넣은 뒤에는 아드리아노의 역전골과 몰리나의 추가골이 나왔습니다. 결승의 마지막을 장식한 선수들이 따로 있더라도, 다카하기의 선제골은 서울이 먼저 경기를 움직이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준결승의 1골 1도움에 결승 득점까지 이어졌으니, 대회 전체에서 그가 차지한 몫이 분명합니다.
서울에서 뛴 다카하기를 리그 기록 3골로만 소개하면 바로 이 활약이 사라집니다. 2015년 FA컵에서는 준결승과 결승에서 각각 골을 넣었고, 준결승 결승골을 도왔습니다. 처음 합류한 시즌에 컵대회 우승과 MVP를 함께 얻은 선수였습니다.
다카하기를 ‘패스를 잘하는 미드필더’라고만 소개하면 실제 역할의 절반만 설명하게 됩니다. 그는 주변 선수의 위치를 살핀 뒤, 공을 오래 소유하기보다 다음 동료가 편하게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았습니다. 수비가 공격수에게 집중되면 자신이 더 높은 위치로 들어갔고, 공격수가 수비 뒤로 달릴 공간이 열리면 전진 패스를 선택했습니다. 울산과의 FA컵 준결승은 이 두 선택이 각각 골과 도움으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다카하기 본인은 은퇴 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공을 받는 동료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줄 수 있을지, 어떤 움직임이 동료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뛰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은 서울 시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그의 패스는 멋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한 선택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드리아노 같은 공격수가 수비수를 등진 채 어렵게 공을 받는 대신, 골문을 향해 움직이면서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선택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히로시마 시절보다 중원에서 몸싸움과 공수 전환을 더 많이 경험했습니다. 다카하기는 나중에 한국 무대의 치열한 몸싸움을 떠올리며, 앞서 호주에서 보낸 시간이 적응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을 갖춘 공격형 미드필더가 서울에서는 더 많은 중원 싸움을 감당하며 자신의 역할을 넓힌 것입니다.
당시 동료와의 관계도 중요했습니다. 다카하기는 서울에서 오스마르가 뒤를 받쳐준 덕분에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고, 측면에서는 차두리와 공간을 메우며 좋은 호흡을 보였다고 회상했습니다. 서울의 2015~2016년 공격을 이야기할 때 아드리아노와 데얀의 골만 보면 중원의 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공을 앞으로 보내기 전 공간을 만들고, 뒤에서 올라오는 선수와 위치를 맞추는 과정에 다카하기가 있었습니다.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서울은 다카하기의 친정팀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같은 조에서 만났습니다. 서울은 3월 홈경기에서 먼저 실점했지만 4-1로 역전승했고, 아드리아노가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오랫동안 히로시마에서 뛰었던 다카하기에게도 특별한 상대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다카하기는 아드리아노의 득점 장면으로 이어지는 공을 보냈습니다. 서울은 앞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6-0으로 꺾었고, 히로시마전에서도 네 골을 넣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공격력이 화제가 됐지만, 골을 마무리하는 선수뿐 아니라 그들이 슈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중원 선수도 함께 봐야 합니다.
다카하기가 히로시마를 잘 안다는 사실만으로 서울의 4-1 승리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은 먼저 실점한 뒤 경기를 뒤집었고, 여러 동료가 득점 과정에 관여했습니다. 다만 다카하기 개인에게는 오래 몸담았던 팀을 상대로 서울의 공격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경력의 두 시기가 맞닿은 경기였습니다.
FC서울은 2016년 K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카하기도 그 선수단의 일원이었습니다. 2015년 FA컵 우승 직후 2016년 리그 우승까지 경험했으니 서울에서 보낸 기간은 길지 않아도 두 개의 우승으로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2016년 내내 다카하기의 입지가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시즌 도중 최용수 감독이 떠나고 황선홍 감독이 부임했습니다. 다카하기는 훗날 감독 교체 뒤 자신의 출전 시간이 점차 줄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특히 전북과 치른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 두 경기에서 벤치에 머문 것을 아쉬운 기억으로 꼽았습니다.
이 변화까지 포함해야 서울 시절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카하기는 2015년 FA컵 우승의 중심에 있었고 2016년 리그 우승에도 함께했습니다. 동시에 시즌 후반에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와 다른 상황을 겪었습니다. 2017년 1월 그는 FC서울을 떠나 FC도쿄로 완전 이적했습니다.
FC도쿄로 간 뒤 다카하기는 일본에서 다시 긴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히로시마와 서울에서 보여줬던 공격적인 모습에 더해, FC도쿄에서는 보다 낮은 위치에서 공격과 수비를 잇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이후 도치기 SC와 싱가포르의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에서 뛰었고, 2025년 1월 현역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2026년 현재는 일본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축구 해설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 도쿄 행사는 현역 선수가 친정팀을 방문한 자리가 아니라, 은퇴한 서울 출신 선수가 K리그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며 팬들을 만난 자리였습니다.
서울 팬에게 더 반가운 이유도 그 인연에 있습니다. 다카하기가 함께 본 경기가 다른 팀의 경기가 아닌 전북과 서울의 맞대결이었고, 팬들은 경기 막판 서울의 승리까지 지켜봤습니다. 오래된 우승 사진 속 선수였던 다카하기가 지금 서울을 응원하는 사람들 앞에 다시 섰습니다.
다카하기 요지로를 이해하려면 리그 46경기 3골 4도움이라는 숫자에서 멈추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2015년 FA컵 4강 울산전입니다. 몰리나의 패스를 받아 직접 문전으로 들어가 선제골을 넣고, 이후 아드리아노의 결승골을 침투 패스로 도왔습니다. 그의 득점 가담과 패스 감각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경기입니다.
두 번째는 인천과의 FA컵 결승입니다. 다카하기는 결승에서도 골을 넣었고, 서울은 3-1로 우승했습니다. 그는 대회 MVP가 됐습니다. 서울에 온 첫 시즌에 컵대회 가장 중요한 두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미드필더였습니다.
세 번째는 2016년의 서울입니다. 아드리아노와 데얀 같은 공격수들이 골을 넣던 팀에서 다카하기는 중원을 거쳐 그들에게 공을 연결했습니다. 그해 리그 우승을 함께했고, 감독 교체 이후에는 출전 기회가 달라지는 과정도 겪었습니다. 좋은 순간만 떼어내거나 후반기의 아쉬움만 강조하는 것보다 두 시기를 함께 보는 것이 다카하기의 FC서울 생활에 가깝습니다.
2026년 도쿄의 K리그 행사에서 그의 이름이 다시 나온 지금, 다카하기는 낯선 옛 선수가 아니라 서울의 두 우승 시즌을 잇는 인물입니다. FC서울의 2015년 FA컵 결승과 그 전 경기인 울산전을 다시 떠올리면, 왜 오래된 팬들이 다카하기의 등장을 반가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