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확장현실(XR)을 결합한 스마트글래스가 차세대 개인용 디바이스로 부상하고 있지만 LG전자는 경쟁사와 달리 제품 상용화를 서두르지 않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과거 메타와 함께 추진했던 XR 헤드셋 사업화를 연기한 데 이어 현재 개발 중인 AI 기반 XR 스마트글래스 역시 구체적인 소비자용 제품 출시 일정은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대신 LG전자는 국책 연구개발 과제를 통해 경량화와 배터리, 디스플레이, 온디바이스 AI 등 핵심 기술을 확보한 뒤 시장 상황을 보면서 사업화 여부를 판단하는 장기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다.
LG전자는 2026년 4월부터 ‘AI 기반 XR 스마트글래스 시제품 개발’ 국책 R&D 과제에 주관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연구 기간은 2026년 4월부터 2029년 12월까지다. 총 연구비는 26억9000만원 규모로, 최종 목표는 실제 제품화에 근접한 수준의 XR 스마트글래스 시제품을 구현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개발 목표는 무게와 사용시간이다. LG전자가 개발하는 XR 스마트글래스는 총중량 49g 이하, 연속 사용시간 8시간 이상을 목표로 한다.
스마트글래스 시장에서 무게는 제품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기존 XR 헤드셋은 높은 몰입감을 제공하지만 크고 무거워 장시간 일상적으로 착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대로 일반 안경과 비슷한 40~50g 수준까지 무게를 줄이면 출퇴근이나 업무, 외출 등 일상적인 상황에서 장시간 착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배터리 역시 중요하다. AI 비서와 카메라, 마이크,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기능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도 8시간 이상 작동할 수 있다면 충전을 반복해야 하는 기존 웨어러블 기기의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다.
LG전자 과제는 단순한 AI 안경보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현실과 디지털 정보를 함께 보여주는 XR 스마트글래스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온디바이스 AI를 활용해 일부 기능을 기기 자체에서 처리하고, 사용자가 보는 실제 환경과 AI 서비스 및 디지털 콘텐츠를 결합하는 방향이 핵심이다.
다만 현재 과제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2029년 말까지 시제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2029년에 소비자용 LG 스마트글래스가 출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LG전자 역시 선행 기술 확보를 위해 관련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 제품 출시 여부와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신중한 접근은 LG전자가 앞서 메타와 추진했던 XR 사업의 경험과도 연결된다.
LG전자는 2024년 2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 경영진 회동을 통해 메타와 차세대 XR 기기 개발을 포함한 전략적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LG전자의 하드웨어와 콘텐츠·서비스 역량에 메타의 XR 플랫폼과 생태계를 결합해 차세대 퍼스널 디바이스 시장을 공략하는 계획이 제시됐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LG전자는 XR 기기의 사업화 시기를 늦추기로 결정했다. 당시 회사는 XR 시장이 예상했던 속도로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사업화 연기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관련 인력 일부도 연구개발과 다른 조직으로 재배치했다. 다만 XR 기술 연구 자체를 중단한 것은 아니었고 장기적으로 시장 성숙도를 확인하면서 R&D를 지속한다는 방향을 유지했다.
2년이 지난 현재 시장 상황은 당시와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 특히 무거운 헤드셋보다 일반 안경 형태의 AI·XR 글래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글로벌 AR·VR 기기 출하량은 전년 동기보다 5.1% 증가했다. 그중 확장현실 글래스 출하량은 79.8% 증가하면서 전체 시장의 46%를 차지했다.
반대로 혼합현실(MR) 헤드셋 출하량은 같은 기간 22.3% 줄었다. 시장 전체가 동일하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무거운 헤드셋에서 보다 가벼운 글래스 형태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시장 집계에서도 2026년 2분기 AR 기기 출하량은 전년 대비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반면 VR 헤드셋은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는 LG전자가 2024년 헤드셋 사업화를 늦춘 판단과 현재 AI 기반 스마트글래스 개발이 서로 모순되는 전략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LG전자가 관심을 늦춘 것은 XR 기술 전체가 아니라 당시 소비자 시장에서 대중화 속도가 느렸던 헤드셋 형태의 제품 사업화였고, 최근에는 시장의 중심이 보다 가볍고 일상적인 안경형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쟁사들이 이미 상용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타는 Ray-Ban 등 기존 안경 브랜드와 협력한 AI 스마트글래스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카메라와 음성 AI를 일반 안경 형태에 넣으면서 기존 XR 기기보다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도 구글과 협력해 Android XR과 Gemini AI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글래스를 공개하며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젠틀몬스터와 워비파커 등 안경 브랜드와 협업해 일상적인 디자인을 강조했으며 실시간 번역과 길 안내, 카메라를 이용한 주변 환경 인식 등 AI 중심 기능을 주요 사용 사례로 제시했다.
최근에는 삼성의 첫 AI 스마트글래스가 2026년 12월 중순 한국과 미국에서 우선 판매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면서 경쟁사와 LG전자의 상용화 속도 차이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LG전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경쟁사보다 늦게 제품을 출시하는 것만으로는 시장에서 차별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후발주자라는 위치를 활용해 배터리와 무게, 디스플레이, AI 기능 등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충분히 확인한 뒤 완성도를 높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LG전자가 목표로 하는 49g 이하의 무게와 8시간 이상의 사용시간이 실제 디스플레이 기반 XR 글래스에서 구현된다면 제품 경쟁력을 결정할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스마트글래스 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가볍고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면서 충분한 성능까지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성능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를 넣으면 소비전력과 발열이 늘어나고, 배터리를 키우면 무거워진다. 반대로 무게를 지나치게 줄이면 사용시간과 성능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안경 수준의 착용감과 스마트폰에 가까운 AI 기능, 실용적인 디스플레이 경험을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 XR 글래스 제조사의 핵심 기술 경쟁이 되고 있다.
LG전자가 상용화를 서두르지 않는 이유도 이 같은 기술적 난도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완성 제품을 출시하기보다 실제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완성도를 먼저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지나치게 신중한 전략은 또 다른 위험을 만든다. AI 플랫폼과 개발자 생태계, 사용자 데이터가 중요한 스마트글래스 시장에서는 초기 시장 점유율 자체가 장기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는 이미 실제 사용자를 통해 카메라와 음성 AI의 이용 패턴을 확보하고 있고, 삼성·구글은 Galaxy 생태계와 Gemini, Android XR을 결합할 수 있다.
LG전자가 수년 뒤 시장에 진입할 경우 단순한 하드웨어 완성도만으로는 먼저 형성된 플랫폼과 서비스 생태계를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향후 LG전자의 XR 경쟁력을 판단할 때는 실제 글래스 출시 여부뿐 아니라 어떤 AI 플랫폼과 서비스를 연결하는지, 스마트폰과 TV·가전 등 기존 LG 생태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동하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용 시장도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소비자가 하루 종일 착용하는 제품보다 제조와 유지보수, 원격지원, 교육 등 특정 업무에 특화된 XR 기기는 명확한 생산성 개선 효과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가 보유한 제조·가전·B2B 사업 경험과 XR 글래스 기술이 결합될 경우 소비자용 스마트글래스와 별도로 기업용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XR 시장의 변화는 분명하다. 과거처럼 대형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공간에 완전히 들어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안경에 AI와 디지털 정보를 자연스럽게 추가하는 형태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IDC는 XR 시장의 성장세가 2027년 신형 글래스 출시 확대와 함께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래스형 디바이스가 향후 XR 시장 성장의 핵심 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결국 LG전자의 전략은 시장 진입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제품을 먼저 출시하기보다 차세대 XR 글래스의 핵심 기술을 확보한 뒤 상용화 시점을 선택하는 접근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기술 확보가 끝나는 시점에 시장의 주도권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다. 경쟁사보다 늦게 들어가더라도 더 가볍고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며 명확한 AI 활용성을 제공한다면 후발주자의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기술 차별화가 부족하다면 시장 진입 시점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핫이슈 인사이트
• LG전자의 현재 XR 전략은 사업 포기보다 헤드셋 중심의 조기 상용화에서 AI 기반 스마트글래스 기술 확보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에 가깝다.
• 2026년 4월 시작된 국책 R&D의 목표는 2029년 말까지 49g 이하, 8시간 이상 연속 사용할 수 있는 XR 스마트글래스 시제품을 구현하는 것이다. 2029년이 소비자용 제품 출시 시점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 XR 시장은 헤드셋과 글래스의 흐름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2026년 2분기에는 XR 글래스 출하량이 전년 대비 79.8% 증가한 반면 MR 헤드셋은 감소하면서 시장의 중심이 가벼운 안경형 기기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 LG전자가 메타와 추진했던 XR 헤드셋 사업화를 늦춘 2024년과 달리 현재는 AI 스마트글래스가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사업 연기와 현재의 글래스 R&D는 시장 변화에 맞춘 전략 수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메타는 이미 AI 글래스 시장에서 이용자와 생태계를 확보했고 삼성전자도 Android XR·Gemini 기반 제품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LG가 지나치게 늦게 진입하면 하드웨어보다 AI 플랫폼과 서비스 생태계 격차가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 반대로 49g 이하 무게와 8시간 사용시간을 실제 디스플레이 탑재 제품에서 구현한다면 LG전자는 후발주자임에도 착용성과 실사용성에서 차별화를 만들 수 있다.
• 스마트글래스 시장의 핵심 경쟁은 단순한 사양보다 무게와 배터리, 발열, AI 응답속도, 디스플레이, 개인정보 보호를 얼마나 균형 있게 구현하느냐에 있다. 상용화 시점을 늦춘 LG전자의 전략도 결국 이 기술적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 장기적으로 LG전자는 소비자용 스마트글래스뿐 아니라 제조·유지보수·원격지원 등 기존 B2B 사업과 XR 기술을 연결하는 방식도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핵심요약
• LG전자는 2026년 4월부터 AI 기반 XR 스마트글래스 시제품 개발 국책 연구개발 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 연구 기간은 2026년 4월부터 2029년 12월까지이며 총 연구비는 26억9000만원이다.
• 최종 목표는 총중량 49g 이하, 연속 사용시간 8시간 이상인 온디바이스 AI 기반 XR 스마트글래스 시제품을 구현하는 것이다.
• 다만 연구 목표는 시제품 개발이며 LG전자는 현재 소비자용 AI 글래스의 구체적인 출시 여부나 상용화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다.
• LG전자는 2024년 메타와 차세대 XR 기기 사업을 추진했지만 시장 성장이 예상보다 느리다고 판단해 같은 해 사업화 시기를 연기했다.
• XR 관련 R&D 자체는 중단하지 않았으며 이후 AI와 XR 기술을 결합한 글래스형 제품의 선행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 2026년 2분기 글로벌 XR 글래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8% 증가하면서 헤드셋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 반면 MR 헤드셋 출하량은 감소해 XR 시장의 중심이 무거운 헤드셋에서 보다 가벼운 스마트글래스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 메타는 이미 AI 스마트글래스 시장에서 상용 제품을 확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구글과 함께 Android XR·Gemini 기반 스마트글래스 출시를 추진하고 있다.
• LG전자는 경쟁사보다 상용화 속도는 늦지만 경량화·장시간 배터리·온디바이스 AI·XR 디스플레이 등 핵심 기술을 확보한 뒤 시장 진입 시점을 결정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 향후 LG전자 XR 사업의 성패는 제품 출시 속도보다 실제 시제품의 완성도와 AI 플랫폼, 서비스 생태계, 기존 LG 제품과의 연동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