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을 꺼내 걸어두는 순간, 그 시절 상암의 공기까지 함께 따라온다.
검붉은 스트라이프, 그리고 등번호 7번.
FC서울 팬이라면 이 번호에 김치우라는 이름이 자동으로 겹쳐진다.
2008년 여름, 서울로 돌아온 이후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7시즌 동안 한 번호를 지켜낸 선수.
그 자체로 FC서울 7번의 정체성이었다.
2008년 7월, 김치우는 세뇰 귀네슈 감독의 강한 요청으로 FC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직후부터 골로 존재감을 증명했고, 팀은 준우승까지 치고 올라갔다.
특히 포항 원정에서 터진 프리킥 골.
K리그 1만호 골이 될 뻔했던,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2010년은 김치우라는 이름이 **‘결정적’**이라는 단어와 연결된 시즌이다.
정규리그 최종전 대전전
→ 후반 42분, 아크 정면에서 꽂아 넣은 결승골
챔피언결정전 1차전 제주 원정
→ 후반 추가시간, 중거리 슛 동점골
시즌 23경기 2골.
하지만 이 두 골은 리그 우승과 K리그 챔피언이라는 결과로 남았다.
우승 다음 날 입대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
이 시즌은 FC서울 팬들에게 유독 깊이 남아 있다.

2012년 9월 복귀 이후 김치우는 다시 묵묵히 팀을 채워갔다.
아디와의 로테이션, 포지션 변화, 그리고 쓰리백 전환.
왼쪽 풀백 → 윙 → 윙포워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측면 지배
날카로운 킥력과 전술 이해도
부상과 나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김치우는 항상 팀에 필요한 역할을 받아들였다.
김치우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들:
왼발 프리킥
택배 크로스
전술 이해도
긴 스로인
측면에서 ‘ㄱ’자로 파고들며 올리는 크로스,
혹은 직접 노리는 중거리 슛은 FC서울 공격의 중요한 옵션이었다.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경계를 오가며
팀 전술의 가변성을 높여준 선수.
그래서 더 오래 쓰였다.
이 유니폼은 단순한 선수 굿즈가 아니다.
231경기
14골 24도움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호를 지켜낸 시간이 담겨 있다.
상암에서 뛰던 날들,
왼쪽 터치라인을 오르내리던 그 모습이
유니폼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김치우는 화려한 스타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FC서울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이 유니폼을 보면,
승리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헌신이다.
지금도 상암에서 7번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
FC서울의 7번은,
한동안은 김치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