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겨울 공기는 차가웠는데, 관중석의 온도는 이상하게 뜨거웠다.
상암이 아닌 목동종합운동장. ‘홈이지만 홈 같지 않은’ 조건이 또 한 번 서울을 시험했다.
그런데도 킥오프 전부터 느껴진 건 하나였다.
FC서울은 오늘, 어떤 경우의 수도 남기지 않고 자력으로 ACLE 16강을 잡아보겠다는 표정이었다.
전반 2-0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 모두는 그 표정이 “가능”으로 바뀌는 순간을 분명히 봤다.
문제는 축구가 90분짜리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하필 오늘 목동의 시계는 **90+**에서 잔혹하게 멈추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히로시마는 소문대로 강하게 달려들었다. 전방 압박이 빡빡했고, 서울의 빌드업은 몇 번이나 흔들렸다.
전반 초반 바베츠 쪽에서 실수가 나왔을 때, “오늘도 쉽지 않겠구나” 싶은 예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 예감을 지워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구성윤이었다.
첫 위기를 막아내는 순간, 골문 앞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가 버티면, 기회는 온다’는 그 오래된 축구의 문장이 목동 잔디 위에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반 10분. 서울은 역습이 어떤 팀의 생존 방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송민규의 긴 질주, 최준의 침투, 그리고 페널티킥.
클리말라 PK는 깔끔했고, 선제골은 ‘오늘은 우리가 먼저 간다’는 선언 같았다.
이후에도 히로시마는 계속해서 두드렸지만, 서울은 라인을 촘촘히 가져가며 공간을 줄였다.
그리고 전반 27분, 결정적인 장면이 다시 한 번 세트피스에서 나왔다.
정승원의 코너킥이 아라이의 자책골을 끌어냈고, 스코어는 2-0.
이때의 서울은 정말 차갑고, 효율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전반의 서울은 “내가 아는 서울”이라기보다 “이겨야 하는 서울”이었다.
기회에서 흔들리지 않았고, 리드를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후반은 전형적인 그림으로 흘렀다. 히로시마는 교체로 템포를 더 올렸고, 서울은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며 추가골을 꿈꿨다.
하지만 기록이 말해주듯, 경기의 큰 흐름은 히로시마 쪽으로 조금씩 기울었다.
유효슈팅 2-7, 기대득점(xG) 1.42-2.54.
전반에 2골을 넣었어도, 후반의 압박과 파상공세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수치’로도 다가오는 경기였다.
여기서 팬 마음이 복잡해진다.
“2-0이면 관리해야지”라는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그 ‘관리’가 가장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후반 30분 후이즈 투입, 문선민 투입은 분명 변화를 주려는 카드였다.
역습의 속도를 유지하고, 상대가 올라오는 순간을 찌르려는 의도도 보였다.
실제로 서울은 몇 차례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한 방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경기는 점점 “한 골만 내주면 위험한 경기”가 되어갔다.
추가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마지막만’이라는 단어를 속으로 되뇌었을 거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오늘은 두 번이나 찾아왔다.
후반 90+3’ 저메인, 그리고 90+6’ 기노시타.
불과 몇 분 사이에, 전반의 모든 설계도가 찢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첫 실점은 컷백과 문전 마무리.
두 번째 실점은 측면 크로스와 헤더.
“한 번 흔들리면 연쇄적으로 무너진다”는 축구의 잔인함이 그대로 재현됐다.
여기서 가장 아픈 건 결과 그 자체만이 아니다.
이 경기는 승리하면 16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고, 무승부가 되는 순간부터는 다시 경우의 수가 시작되는 경기였다.
팬 입장에서 ‘경우의 수’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또 다시 남의 경기 결과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게 된다.
오늘의 무승부가 “다 망했다”로 끝나면, 그건 서울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결론일지도 모른다.
우선 구성윤의 선방은 분명했다.
초반 실수로 열린 1대1 위기부터, 후반에도 팀을 살린 장면이 여러 번 있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2-2가 아니라 더 일찍 뒤집혔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세트피스의 힘이다.
PK는 세트피스의 한 형태고, 코너킥에서 자책골을 유도한 것도 결국 ‘준비된 장면’의 결과다.
서울이 득점 루트를 확보했다는 건, ACL 같은 단기전에서 꽤 중요한 무기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동의 분위기.
추운 날씨, 경기장 변경, 설 연휴 같은 변수 속에서도 7,441명이 모여 수호신의 노래를 만들었다.
상암이 아니어도 ‘서울의 홈경기’가 성립한다는 걸 증명한 밤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아프다.
이런 밤에, 승리를 안겨주고 싶었던 경기였으니까.
결국 FC서울 vs 히로시마는 2-2로 끝났고, 우리는 전반의 환호와 후반의 침묵을 한 번에 품게 됐다.
‘추가시간 2실점’이라는 키워드는 너무 자극적이라서 오히려 진짜 본질을 가릴 수도 있다.
오늘의 본질은 하나다.
서울은 분명 이길 수 있는 축구를 만들었고, 동시에 끝까지 지켜내는 축구를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즌의 큰 무대는 이런 밤을 통과하며 단단해진다.
목동에서 놓친 승점 2가 아픈 만큼, 다음 경기에서 그 아픔이 집중력으로 바뀌길 바란다.
우리는 또 응원할 거다.
상암이든 목동이든, 서울이 뛰는 곳이 곧 우리의 홈이니까.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다음에는 “90+”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 되길. ⚫🔴